웹진 보다에 연말결산 했던 것. http://bo-da.net/entry/1202
제 코멘트만 정리해서 올려둡니다. 기록용. 윤영배, 404, f(x), 진보의 신작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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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배 [좀 웃긴]
송라이터로서의 윤영배가 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그의 송라이팅은 하나음악으로 대표되는 1980~1990년대 한국 포크 팝 스타일의 완성형이라 볼 수 있다. 그는 그 씬의 모든 미덕을 담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다 끝난 얘기' 같은 전 세대의 스타일을 잇고 있음에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진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EP인 [좀 웃긴]에서 그러한 진보는 주로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적당한 스피커를 사용해 보통의 한국 포크 음반과 이 음반을 비교해 들어본다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음반의 사운드는 굉장히 입체적으로 구성되어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적당한 너비의 스테레오 공간 위에서 악기들은 저마다의 '좋은 곳'에 자리를 틀곤 잘 정련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배치와 배분. 댐핑감 좋게 앞으로 튀어나오는 악기는 없지만 대신 조화롭고, 편안하며, 효율적이다. 금욕주의적인 사운드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인의 송라이팅 스타일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여담이지만 최근 한국의 젊은이들이 만들고 있는 포크 팝의 사운드는 1) 알맞지 않은 로파이 레코딩(과 질 낮은 송라이팅)으로 본연의 소박함을 헤치고 있거나 2) 명확하게 들리는 쪽을 선택함으로서 스탠더드 팝 사운드와 아무런 차이가 없어지거나 3) 소박한 사운드라는 지향은 살렸으나 역으로 무미건조해져 '듣는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가인 조동익이 어레인지를 담당한 이 음반은 여전히 '고수'와 '작가주의'가 의미 있다는 당연한─하지만 쉽게 잊히곤 하는─사실을 다시 환기시킨다. 미안하지만 포크 팝계로 한정한다면 여전히 1980~1990년대가 승리하고 있다.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다. <좀 웃긴>에서 스테레오로 녹음된 청량한 포크 기타 사운드. <소나기>의 딜레이 걸린 일렉트릭 기타. <죽음>에서 무겁게 내려앉은 저음역대의 신서사이저.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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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1]
-이 음반에는 (목소리를 제외하면) 기타와 드럼 소리만이 담겨있다.
-이 음반에는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리듬이 담겨있다. 한국에는 원래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리듬이 담긴 음반이 별로 없다. 이 음반은 끝날 때까지 평범한 8비트 고고를 한 번도 연주하지 않는다. '요즘 음악'이라면 그게 정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음반에는 자신의 역할이 기본적으론 리듬 악기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기타리스트가 만든 기타 리프들이 담겨있다. 한국에는 원래 리듬을 고려하면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별로 없다. 게다가 펜타토닉 스케일을 너무 많이들 쓴다. 이 음반은 끝날 때까지 펜타토닉 스케일과 초킹을 이용한 블루지한 기타 솔로를 한 번도 들려주지 않는다. '요즘 음악'이라면 그게 정상인 것 같기도 하다.
-전반적인 디렉팅을 겸하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정세현은 포스트 펑크와 크라우트 록에 대한 애정을 종종 피력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뽕에 대한 애정도 종종 피력해왔다. 이 음반은 헤비메탈에 판소리와 태평소와 장구를 섞는─대부분 멍청한 결과로 귀결되는─짓거리를 하지 않고도 뽕의 정서를 잘 체현해냈다. 멍청하게 말하자면 '글로컬'하다 할 수도 있겠다. '요즘 음악'이라면 그게 정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음반의 사운드는 로-파이하지만 오히려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한국에선 원래 로-파이하면 100에 90은 망한다. 하지만 이 음반은 안 망했고 오히려 특수한 질감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요즘 음악'이라면 그게 정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음반은 영리하지만 재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건 우리는 이제야 정상적인 '요즘 음악'이 담긴 CD 한 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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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Electric Shock]
이 음반에 대해선 이미 가장 좋은 글이 나왔기 때문에 뭐라 더 붙일 것이 없다. 이 글을 읽어라. http://verymimyo.egloos.com/5646158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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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KRNB]
-이 음반은 정규음반이 아니라 믹스테이프다. 실은 음반이라 부르는 것도 조금 어려운데 인터넷을 통해 음원으로 공개되었다(비매품 형태로 실물이 제작되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음반이 나오건 말건 대부분 디지털로 듣는 마당에 음원으로만 풀렸다고 '올해의 음반'으로 추천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게다가 좌우지간 13트랙이라서 구색도 맞다.
-완성도가 높은 음반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잘 조율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가끔씩 쳐지는 느낌도 든다. 믹싱도 아쉬운데 의도에 비해 로-파이하게 들리는 측면이 있다 생각된다. 그걸 원한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이들은 그가 '옛 가요'와 '아이돌 팝'을 커버했다는 점을 높이 사는 것 같은데 막상 들어보면 원곡을 충실하게 살린 것도 아니고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작업들처럼 '재발견'의 측면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부분도 장점이라기엔 애매하다.
-그럼에도 이 음반에는 좋은 음악이 담겨있다. [Afterwork]보다 더욱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며 (역시 전작에 비하면) 오밀조밀한 맛과 위트는 떨어지지만 기본적으론 더욱 좋은 어레인지를 들려주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치우더라도, 이 음반이 올해 한국에서 가장 들을만한 네오 소울임에는 변함이 없다.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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