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거짓말꽃]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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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거짓말꽃 (2009/붕가붕가 레코드)
6.8


01. 불신자들
02. 거짓말꽃
03. 불꽃놀이
04. 딱 중간



순전히 재미로 쓰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동시에 '재미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은 조금 파들고 싶은 욕구도 있었는데, 중간에 관두었다. 해봤자 겨우 네 트랙짜리 데뷔 싱글 가지고 밴드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그보다는 본질적으로 네 트랙 싱글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내 능력부족이 더 크겠고. 하지만 쌍방과실일 게다. 그쪽에서도 제시하는 패가 애매하니, 내 쪽에서는 수를 읽어내기 도통 어려울 수밖에. 요약하자면 '댄서블한 로큰롤을 연주하는 4인조 혼성밴드' 정도가 될 아침은, 그러나 정말로 딱 그렇게만 요약한다면 화장실에서 홀로 돛대 한 모금 빨다 괜히 울컥해 눈물 한 방울 떨굴지도 모르는, 그런 밴드 되겠다.

기억을 되살려보자. <불꽃놀이>를 가장 먼저 들었었지, 아마. 전주의 기타 리프는, 솔직히 진부했다. 이거 '걔네'잖아? 이미 홍대 앞에서 많이 오마쥬되곤 하는 '걔네'. 그러다 중간 넘어가니, 또 이번엔 '쟤네' 같다. 역시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서 인용당하는 '쟤네'. 알다시피 요런 상황이 그리 영양가 있는 상황일 수는 없겠고. 그런데 두 번째 들었을 때는, 재미있게도 '걔네'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던 것. 마찬가지로 '쟤네'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대신 이번에는 '얘네'가 또 연상되네? 계속 이런 식이었다. 또 듣다보면 '얘네'도 아니고. 꼼꼼히 따져본다면 '리스트'를 못 만들 것도 없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아니, 싱글 하나 듣는데 그렇게 따질 필요 있으려나. 혹여 '별로'였다거나 '내츄럴 본 따라쟁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듣다보니 꽤 재미있었던 것! 게다가 나름 중독성도 있고. "아! 하! 하! 하! 나중에 / 아! 하! 하! 하! 다음에(<거짓말꽃>)" 왜, 중독성 있지 않나? (여담이지만 왠지 아! 하! 하! 하! 하고 느낌표가 꼭 붙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3일 밤낮을 들었다, 라고 말하면 조금 거짓말이고. (꽃이 핀다!) 쨌든 솔찬히 들었긴 들었다. 이, 완전히 잡식성인 싱글; [거짓말꽃]. <불신자들>에서의 뜬금없는 제 3세계 음악 오마쥬도 그렇고, <거짓말꽃>에서의 난데없는 보사노바도 그렇고. 누구 노래 제목을 빌려오자면 말마따나 정말 '뭐라 말하기 어려운' 로큰롤들 아닐지? 다양한 장르의 사생아들이 주제에 서로 눈치 하나도 안 보며 재잘재잘 대는 상황,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어떤 '정서'다. 아침은 꽤나 트렌디한 장르들을 제한 없이 참조하면서도 그 정서에 있어서는 다분히 한국적인, 혹은 토속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불꽃놀이>에서 등장하는 '귀신들'과 '달님', 그리고 '시치미' 같은 경우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텐데, '귀신들'은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Ghost' 정도가 가능하겠지만, 그 뉘앙스의 차이는 누구나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같은 연유로 '달님'은 'Moon'과 정확히 대응하지 않고. ('시치미'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단순히 생색내기로 문어체 단어들을 활용했다고 하기에는 단어 하나하나를 잘 씹어 노래에 녹여낸 솜씨가 돋보이며, 고로 <거짓말꽃>의 후렴구("아! 하! 하! 하!")는 비웃음인 동시에 한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한풀이. 디스코와 뽕 사이를 아슬아슬 오가는 저돌적인 리듬 섹션과 권선욱(v, g)의 왠지 청승맞은 보컬을 쌍두마차로 달려 나가는 아침의 로큰롤은 열광적이기 보다는 속이 후련한 것이 정통적인 록 보다 오히려 한풀이에 가깝겠다는 생각이다. 아따, 그놈 참 소리 잘헌디야!

그런데 그 한(恨)이라는 거, 또 마냥 직설적으로 분출되지는 않고. 오프닝 트랙인 <불신자들>의 한 줄짜리 노랫말을 살펴보자; "믿음이 타고 있다 / 그곳에 고기를 구워먹자" 이것은 필시 '두 번 죽이기'다. 믿음을 태우고서, 또 거기다 고기까지 구워먹다니, 꼰대들에게는 후레자식이라 손가락질 받아 마땅할 것. 여기서 체크 포인트, 아침은 "믿음을 태우고서 '어디론가' 진격하자!"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그냥 고기를 구워먹자고. 비슷한 상황이 <불꽃놀이>에서도  반복된다; "타오르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 귀신들은 저 멀리서 웃고 있는데 / 달님은 모든 걸 알면서도 무심한 척 / 손톱 손질 중" 여기까지도 시니컬한 센스가 돋보이지만, 압권은 그 다음이다. "이윽고 재가 된 세상 앞에서 / 우리는 모두 시치미를 / 뚝" 그렇다, 시치미를 떼버린다. 재가 되든 말든, 나는 모른다고. 믿음이 타든 말든, 고기나 구워먹자고. 이는 명백한 조롱이다. 먼저 믿음(dogma)을 베어버리고, 다시 꼰대들(rule)을 베어버린다. 그러면서 넌지시 얘기한다; "아직까진 중간인 상태로 있는 게 중요해(<딱 중간>)" 딱, 중간이란다. 특히 이 사회에서라면 아주 환영받기 어려울 포지션. 그러나, 그렇기에 이는 오히려 모종의 쾌감을 선사한다. 말하자면 '인정'의 뉘앙스. 슬프지만 진실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이 재가 되도 별 도리 없기에,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별 수 없기에, 고기를 구워먹는 것이다. 솔직히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트랙인 <딱 중간>이 가장 스탠다드한 팝 록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쯤 되니, 어쩐지 그네들이 조금은 섹시해보이기도.

애매함에 대한 긍정, 여기서 긍정이란 외상(trauma) 없는 긍정으로서의 긍정일지언데, 그렇기에 아침의 [거짓말꽃]은 비록 짧을지언정 손색없는 한풀이 한마당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 로큰롤에 태생적으로 베어든 '잡종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고; "그래, 나 잡종이야. 그런데 왜?" 이러면 당장은 조금 뻔뻔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은근히 매력적일 수도 있다. 최소한 덜컥 겁먹고 오들오들 떠는 것보다야 백배는 낫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런 태도는 좋다. 그리고 쿨하다. 취향으로서의 좋음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인간적인 호감일 수도 있겠다. 아침이 '썩 괜찮은' 이유는, 그러한 삶의 태도들이 연주에서 잘 배어나오기 때문일지도. 어쨌거나, 호감형 인정이라고. 재미로 시작한 글이 본의 아니게 길어져버렸는데, 쓰는 동안 제 자신이 흥에 겨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노파심(?)에 하나만 더 첨언하자면, 근래 발매된 음반들 중 이들과 비슷한 '태도'를 공유하는 친구들이 꽤 있는 듯한데, 다음 세대(!)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주축은 아마 이런 친구들에 의해 가능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는 아직 근거 없는 예감에 불과한데, 이런 저를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다음 작을 들려주셨으면 하는 마음. 재미있게 잘 들었으며, 글 쓰면서도 참 재미났다. 정규작을 '무척' 기대한다. (단편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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