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들. Night & Day

원치 않았지만, 1달 만에 기록하는 근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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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근황의 마지막 節은 '설레는 일이 있다'는 식이었다. 이번 근황의 첫 節은 '설레는 일이 없다/없어졌다' 쯤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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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출장(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다 본다)이 있었다. 크게는 원주, 광주, 수원에 다녀왔고,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이 움직였다. 10월 한달은 정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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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하여 일주일 정도 전부터는 다시 (일전의 자전거 사고로 말미암은) 후유증으로 크게 고생을 하고 있다. 목부터 오른쪽 어깻죽지까지가 영 좋지를 못한데, 어제는 기지개를 켜다 크게 삐는 바람에 하루종일 아주 고생을 했다. 저녁에 아버지에게 침을 맞고 부황을 뜨니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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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로, 당분간 금주를 할까 생각 중이다. 내뱉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이대로 아픈 몸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간 후유증이 지속된 것도 결국은 늘 술을 마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술자리에 가더라도 당분간은 물만 마셔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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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자면, 10월 초에 있었던 상지대에서의 공연은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무려 갤럭시 익스프레스 다음 순서였는데, 의외로 무리없이 관객들과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끌고 갈 수 있었다. 공연이 나쁘지 않았던지, 함께 갔던 Gaiahead 선생과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다 엉겁결에 상지대 학생들과 동석을 하게 되었고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처음 뵙는, 또한 어린 대학생들과 술을 먹을 기회가 잦지 않은지라 대화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는데, 아무래도 '홍대앞'이라는 곳에 대한 로망이 가득했다(그러니 나같은 사람에게도 로망을 투사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로망 중 거의 대부분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꽤 흥분해있던 어린 친구들에게 줄곧 '별 볼 일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실은 나 역시 그 맘 떄쯤,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아주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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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10월 만큼 대학교에서 공연을 많이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상지대를 필두로, 이화여대, 광운대, 경희대 서울캠퍼스, 그리고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공연이 있었다(적어보니 내 기억보다도 많아 다시 한번 놀란다). 흥한 순으로 배치를 하자면 상지대 > 경희대 국제캠퍼스 > 경희대 서울캠퍼스 > 광운대 > 이화여대. 솔직한 얘기로, 상지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연주들이었다. 여기서의 만족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만족일지언데, 학교에서 공연하는 경우에는 모니터링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내 쪽에서의 만족감과 상대쪽에서의 만족감이 많이 다른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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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공연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그리고 서울캠퍼스에서의 공연인데 굳이 내 모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굉장히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국제캠퍼스에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하헌진, 노컨트롤, 이랑, 멍구밴드, 그리고 내가 출격했었는데 사실 분위기 자체는 전반적으로 다소 애매했다. 개인적으로는 무대가 너무 높았다는 생각인데, 우리하고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관객과의 거리가 적잖이 차이가 나자, 그만큼 공연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차라리 길바닥에서 했었다면? 어쨌거나 공연을 잘 끝낸 우리는, 섭외를 해주신 송찬근 씨(경희대 외국어대 부학생회장이자 하드코어 밴드 파인드 더 스팟의 목소리이기도 하다)와 술을 한잔 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판이 커졌다. 찬근 씨의 후배, 그리고 일본어과 학생회장 일행이 왔었는데 마침 일본어과 학생회장의 친구분들 중 아리따우신 분이 있던 것이었다. 술도 마셨겠다, 나는 크게 추근덕 거리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조금은 호감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잔뜩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내게 연락처를 주었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그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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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서울캠퍼스에 공연을 갔던 것은 국제캠퍼스에서의 연주보다 시기적으로는 앞이었다. 큰 공연은 아니었으며, 간단한 공연이었는데 사실은 이것이 대박이었다. 경희대 중앙대자보 판이 있는 곳, 그러니까 정경대학, 문과대학, 이과대학, 법대 등의 단대 학생들이 모두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에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장비들을 모두 실어가 설치를 했는데, 정말 지나가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었다. 정경대 주최의 행사라서, 정경대 스쿨밴드의 공연도 있었고(나는 이 밴드의 공연을, 아주 좋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설익은 맛이 일품이었다.) 풍물패의 공연도 있었다(간만의 풍물은 우리를 들썩이게 했다). 이날, 야마가타 트윅스터, 이랑과 함께 출격했는데 나야 그렇다 치고, 이랑과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은 정말 훌륭했다. 이랑은 젬베를 치는 보라 씨와 함께 왔는데, 특히 보라 씨의 코러스가 일품이었다. 아주 토속적인 느낌의 트위팝이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엄청났다는 표현이 맞겠다. 지나가는 모든 학생이 멈추어섰다. 어떤 학생들은 스테이지로 난입하여 춤을 추기도 했다. 춤을 추기 위한 음악에, 이만한 영광이 어디 있을지?

(아쉽게도 사진이 내 사진 한장 뿐이다. 정말 즐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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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쯤에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명의로 <Fishmans & More Feelings Festival(이하 Fishmans)>에 부스로 참가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날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컴필레이션 Vol.1]을 발매했다는 것인데, 사실 <Fishmans>에 부스로 참여하기로 한 것도 급하게 결정된 마당에, 겨우 일주일 정도의 텀 사이에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여 끝냈다. (하지만 대충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칼 루이스>로 참여했는데, 당시에도 여전히 몸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결국은 정식으로 레코딩을 하지는 못하였으며 대신 그즈음에 있었던 두리반에서의 라이브 트랙을 따 싣게 되었다(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쉬움이 많다). 어찌되었건 50장 정도를 찍었는데, 당일날 반 정도가 팔려나갔고 그 후로도 의외로 아주 빠르게 팔려나가 가뿐히 매진! 그래서 최근의 회의에서는 일단 30장 정도를 더 찍기로 했는데, 말하자면 2쇄다. 아주 많이 찍을 생각이 없는지라, 맥시멈으로 150장 이하로 찍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 리뷰가 올라와있다.)


부스로 참여를 하면서 밴드들의 공연을 보았는데, 실은 사운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출연하는 팀들이 충분히 리허설을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한 이유였는데, 일단 초반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어 딜레이가 2시간 정도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2시간 딜레이가 된 후 fishmans부터 리허설을 시작했는데, 일본의 밴드들은 그나마 비교적 긴 시간 리허설이 가능했지만 한국의 밴드들은 아주 짧게만 가능했던 것을 기억한다. 고로 한국 밴드들의 사운드는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는데 특히 간만에 아마츄어증폭기를 위한 아마츄어증폭기로 무대에 오른 한받의 무대는 여러모로 안타까웠으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경우에도 거의 베이스가 들리지 않는 등, '팬심'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fishmans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유주루 상의 새로운 밴드 otouta까지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반전은 harada ikuko에서, 아주 훌륭했다. 이로부터의 연주들은 모두 다, 특히 fishmans 할 때는 ㅠㅅㅠ 중간중간 보컬이 바뀌면서 공연을 했었는데 (리허설 때 보면서 '너무 나간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던) 김반장의 무대까지, 아주 흥겨웠다. (가을방학의 계피를 빼고서는, 다 좋았다. 계피는… 뭐랄까…)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 전, 공중캠프의 고엄마가 불려나왔는데 fishmans는 고엄마에게 괜히 '한 마디'를 하게 시켰다. 그때 고엄마는 (찾아주신 분들에 대한) 별 특별할 것 없는 감사인사를 드리고서는, 자신의 소감에 대해서는 "10년 만에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짧게 코멘트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나는 fishmans의 오랜 fan인, 옆자리에 있던 지인 oddfish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소원을 이룬 것 같았다. 그 장면만큼은 오래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부스를 정리하면서 함께 모임을 하고 있는 다함도 말했다. "우리도 10년 하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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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mans>를 마치고, 얼마 후 있던 뒷풀이 자리에서 '깜짝연주'를 제안받은 나는 혼자 불타올라 <My Life> 커버를 준비했지만 결국 언어능력의 한계로 좌절! (참고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 평균 일본어 성적은 30점 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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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mans>도 좋고, 다 즐거웠지만 2010년 10월의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은 아마 프린지 페스티벌, 그리고 비엔날레에서의 공연 때문에 광주에 다녀온 것이 아닐지. 이번에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게으른 오후, 이랑, 하헌진, 나, 이렇게 다섯 팀이서 가게 되었는데 정말 내내 행복했다. (물론 중간중간 불화가 있던 경우가 있었지만-대부분의 원인은 나였다-나는 원래 '행복하다'라는 상태가 '화가 났다'라는 상태와 모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라. '행복하다'는 그보다는 훨씬 장기적인 상태라 본다.)

처음 광주를 도착하자 마자 금남로에서 공연을 했는데,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자원봉사를 하는 스탭들(그쪽에서는 '아트-메이커'라는 직책으로 불린다는 생각이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여담이지만, 이번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내 몇몇 지인들은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도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광주 쪽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오히려 상근자들은 꽤 힘들었을 것 같다.) 이때 나는 좋은 연주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나머지는 대체로 좋았다. 이때 우리는 점심을 먹지 않아 아주 배가 고픈 상태였고, 결국 옆에 있던 짜장면 집에 들어갔는데 맛이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광주에서 먹은 음식들 중, 상대적으로는 가장 맛이 덜한 음식이었다. 그만큼 광주에서의 음식들이 훌륭했다는 이야기다.


금남로에서의 거리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역시 금남로에 위치한) 아트살롱 플러그라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저녁에는 그 곳에서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주관으로 <플러그 토크쇼 : 음악의 자립, 자립의 음악>이라는 토크쇼를 개최했다. 한받 씨는 <발효음악론>을 발표하였고 나는 <자립의 조건 : 두리반의 경우>라는 일종의 보고서 비슷한 것을 발제하였다. 프린지 페스티벌에 오기 전날, 그전까지 일정이 많았던 지라 거의 작업을 못해놓아 새벽 3시 정도까지 쓰다가 잤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특히 후반부가) 참으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한받 씨의 <발효음악론>도 내용이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내 발제는 정말이지 너무나 길었다. 거의 50분 정도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순서였던 토론이 시간이 늦은 관계로 취소되게 되었다. 너무나 아쉬웠다. 광주의 창작자들과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두고두고 안타까웠다.

토크쇼가 끝나고, 정리를 하고 있던 우리 쪽으로 (2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이 다가와 "너무 인상적이었다"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를 C씨라고 하자. (국가적 차원의 일을 하고 계신 분인지라 여기서 그의 신상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C씨는 우리가 숙소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여 고민을 하고 있자 대범하게도 자신의 숙소에 재워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우리는 '성령충만하다'라 표현했다.) 마침 광주에 사는 내 지인이 통닭을 사오기로 하여 분위기가 고조된 와중, 함께 광주에 갔던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계시던) 정감독님과 그날 토크쇼에서 발제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가 나와 갑작스레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 모임 차원에서 검토되지 않은 발제문을 발제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는데, 실은 내 입장에서도 광주에서 발제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도, 코멘트를 주지도 않았으면서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남 얘기하듯 말하던 까닭에 조금 억울한 면이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화를 낼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마음이 영 좋지를 못했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다 곧 통닭이 왔고, 우리는 다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면서 닭을 뜯었다. 광주의 닭은 여러모로 엄청났다. 양적인 면에서,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모두 빠짐이 없었다. 서울토박이인 나는 일찍이 접해보지 못한 경지였다. 당시 내가 받은 감동은 이런 짧은 글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통닭을 늘 곁에 두고 사다먹을 수 있는 광주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다음날, 다소 늦은 시간에 일어난 우리는 이런저런 잠답을 하며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이미 통닭을 사온 친구는 가고 없었다(나는 전날, 통닭을 먹으며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나 2시도 전에 뻗어 잠들었다). 비엔날레에 가기 전, 정감독님의 소개로 유기농야채쌈밥을 먹으러 갔는데 세상에, 이것 역시 엄청난 맛이었다! 서울에서는 최소한 15,000원 이상 주어야, 혹은 그것을 주어도 안 나올 것 같은 찬들이 한 상 그득했다. 이 역시 나의 짧은 수사로는 도무지 표현을 할 수 없으며, 이를 음미하고 싶은 자는 지금 당장 버스를 타기를. 비엔날레에는 가족들이 많이 나와있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주최 측에서 붙여놓은 공지가 A4 용지에 성의없게 인쇄한 프린트 몇 장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름까지도 잘못 나와있던 것이다(일례로 나는 '화기동 단편선'이라고 나와있었다). 게다가 공연을 하러 온 음악가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를 전혀 관람할 수 없게 하였고, 당연히 대기실도 없었던 지라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멍청하게 근처 풀밭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망쳐버릴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공연을 하려하니 가족 단위로 사람들도 많이 왔고 호응도 좋아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렇게 사람마음이 간사한 것이다. 마침 내 공연 때,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컴필레이션을 많이들 찾아주셔서 매진이 되었다. 여러모로 광주시민들에게 감사했다.

지난 번의 남쪽접근 투어에서도 광주에 다녀갔지만, 느낌이 사뭇 달랐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스탭들은 대체로 친절했고, 식사는 정말 모든 것이 맛있었으며, 심지어 날씨도 좋았다. 연주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셨고, 다들 선입견 없이 들어주신다는 느낌이었다. 지난 투어에서는 왜 이리 꼬였을까? 모두들 광주에 종종 들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서울로 돌아왔다. 참, 우리는 광주에서 출발하기 직전에도 역시 양동시장에 가서 통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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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다녀온 지 꼭 일주일, 여의도 둔치에서의 공연도 여러모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좋은 의미에서보다는 안 좋은 의미에서다. 당초 9월 초에 하기로 했던 선유도에서의 공연이 우천으로 연기되면서 흐지부지 하다가 10월이 되서야 다시 제대로 논의가 되기 시작했고, 결국 너무 추워지기 전인 10월 말에는 선유도에서 다시 공연을 하기로 했었는데 사실 포크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소규모의 공연이었던 탓에 그저 조그만 휴대용 앰프 들고가서 하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혹시나, 해서 선유도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해보니 '통행로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되고,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려면 예약을 해야하는 데다가 대금도 지불해야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기에, 결국 공연 이틀 전에야 급하게 여의나루 역 근처의 한강변에서 공연하기로 변경하였다. 조금만 먼저 알아보았다면 이런 착오는 없을 것이었다. 공연이야 어쨌든, 기획을 함께 한 입장에서는(또 이런 기획을 이미 많이 해봤던 입장에서는) 잘 챙기지 못한 것이 함께 한 음악가들에게 미안했다. 당일날 공연에서 느낀 것들도 있지만 굳이 적지는 않겠다. 나는 굳이 대중적으로 접근하려다, 공연을 아주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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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에서의 작은 공연이 끝나고, 다음날은 맞바로 꽤 작지 않은 규모의 <나의 북한산을 지켜줘> 문화제를 하는 날이었다. 8월달부터 해왔던 <나의 북한산을 지켜줘> 거리공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문화제였는데, 이런 (다소간 문화운동적인 성격을 띤) 기획은 예전부터도 많이 해왔지만 그전까지는 아무래도 sub의 입장이었고, main으로 뛴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지 않았나 싶은데, 느낀 것은 역시나 아직 기획자로서는 많이 부족하구나, 라는 생각이었다(다른 것을 잘 한다는 이야기가 아님을 유의). 마음은 이미 저멀리에 가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또한 꼼꼼하지 않은 나의 성격으로 실수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하지만 많지도 않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강북'이라는 흥미로운 local에 대하여 접근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몇 개 찾아낸 것, 그리고 실제로 (아직까지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조그마한 network를(특히 수유재래시장의 미술가들과)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3개월 정도의 프로젝트가 끝났으니, 일단 당분간은 잠시 몸을 추스리겠지만 다음 봄이 오기 전부터는 강북 쪽에서 또 프로젝트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아주 예감이 좋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문화제는 잘 흘러갔고 출연자들은 대체로 좋은 연주를 보여줬다. 지역주민들의 호응도 아주 좋았기에, 지역에 있는 공동체들도 꽤 고무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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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말미, 역시 몇 개월 간 준비해온 '전태일 40주기 행사'를 치루었다. 이날 나는 가장 늦은 밤에 시작하는 '독립음악난장'의 조연출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그전까지는 체크할 것만 있지 크게 할 일이 없어 앞에 있는 비정규직 대회부터 쭉 보았는데, 간만에 참여한 집회가 왠지 생경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뭉클한 것이 있었다. "나의 손 높이 솟구쳐 / 차별 철폐를 외친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노동자들이 합창하는데, 옆에 앉은 지인의 지적에 생각을 해보니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지민주 씨는 역시 민중가수인 연영석 씨와 그날 결혼을 한 것이었다. (멀지 않은 어느 섬으로 신혼여행을 가신다 했는데) 참 농담같은 일이 다 있다, 라며 생각했다. 어찌되었건 북한산의 프로젝트와 더불어 이것마저 끝남으로서, 1년의 남은 달은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물론 삶은 나를 가만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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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기록이 아닌 다소 개인적인 일들, 사실 9월달 정도부터는 책 한권을 끝까지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지난 주쯤부터 해서 읽다 놓았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 책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내게도 별 도움이 되지를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얼마 전 읽다 놓았던 리민치의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몰락』을 완독했다. 그래프가 많기는 하지만 어려운 내용도 없고, 읽을 만하다는 생각. 읽다 말았던 시집들도 다시 읽었는데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는 내게는 다소 부담스러웠던. 밀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이다. 그에 비하여 다시 읽은 김경주의 『시차의 눈을 달랜다』는 아주 좋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꽤나 좋아하는 소설가인 김중혁의 첫 장편인 『좀비들』을 사서 읽었는데 왠지 지금까지의 단편들보다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흥미로운 스토리에 적절한 긴장감은 나쁘지 않지만 뭐랄까, 그 다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역시 읽다 접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있고, 아마 끝나면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를 끝까지 읽지 않을까 한다. 정말 근래에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게을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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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인터뷰가 실린 책도 출판되었다. 철수와 영희,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에서 함께 출간한 『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라는 책인데, 아직 제대로 정독하지는 못했고 한번 대략 훑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태일 40주기를 추모하면서 뜻있는 출판사들이 힘을 모아 낸 책이다. 뜻은 좋은데, 훑은 감상으로는, 일단 내 인터뷰가 수록된 책이기도 하지만, 크게 와닿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일단은 내가 참여한 인터뷰부터도 마음에 썩 들지를 않는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으로 유명한 임승수 씨가 나, (<민족21> 기자인) 전아름, 그리고 노이즈 뮤지션 박다함을 인터뷰 했는데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별로 탐탁치가 않았으며 인터뷰 끝난 다음에 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아주 신뢰감이 떨어질 만한 일들이 있어, 실은 인터뷰 했던 당사자 모두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터뷰였다. (구체적으로 사건에 대해 서술할 이유는 없겠지만, 우리는 인터뷰 싣는 것을 보이콧할까, 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어찌되었건 전태일 열사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잘 되기를 비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편치 않은 부분도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첨언하자면, 나는 '너는 나다'라는 제목도 실은 조금 무섭다. 나는 그런 식으로 연대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두리반에서도, 내가 늘 느끼는 것은 거리감이지 동질감이 아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의심하지 않는 동질감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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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받 씨의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라 한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야 물론 축복할 일이지만, 실상 한받 씨가 지금처럼 음악가로 살갈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비정규'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한받 씨의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다. 또한 한받 씨가 음악가로 앞으로도 계속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이 둘은 언제까지나 함께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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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있는 청어람 아카데미란 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와 곧(실은 내일) 해야하는데, 대략의 컨셉은 '20대'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오면 될 것. 하지만 문제인 것은 (강연 요청을 하신 분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는 별로 내 동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 된다. 요즘에도 나는 조금씩, 누군가에게 강요 같은 것을 할 수 없는 성격이 되어만 간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일들을 자기로 귀인하는 경우가 잦아지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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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비와의 문제가 조금 있다.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는 없겠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거나, 그런 종류의 문제는 아니다. 풀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나는 바다비에게도 그렇고, 홍대앞이라는 로컬 씬을 향해서도 그렇고, 그것만큼은 진심으로 위하는 행동을 하고 싶은데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나는 오늘 바다비에서의 연주가 있고, 이러한 불안한 마음을 아마 그대로 투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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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하다. 근래에 큰 손실을 본 것이 있기 떄문이다. (150만원 가량의 손실이라고 하면 알라나…) 난생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정말 해야되나, 생각을 했다. 정말 아르바이트 만큼은 죽어도 하기 싫다는 마음과, 돈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로는 음악과 글 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큰 손해가 났을 때는 도무지 메꿀 힘이 없는 것이다. 내가 단기적으로 당겨올 수 있는 돈을 계산해보니 70만원 남짓,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빚지고 살기는 싫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과연 음반 작업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정말 생각이 없다. 가난하다는 것은 이렇게, 대책이 없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가난하지도 않다(나는 집에 얹혀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가난한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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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로, 공연을 많이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인데, 정작 11월달이 되니 일정이 들어오는 것이 별로 없다. (일주일에 최소한 3~4번은 공연하던 10월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마지막 대목이었을까?) 내게 월동 계획은 있나?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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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북한을 '비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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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앞에도 썼듯, 몸을 추스릴 생각이다(혹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당분간 금주모드. (이는 실은 역사적인데, 고등학교 시절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나는 아프다고 금주를 선언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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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몰아서 근황을 기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러나 실은 바빠서 어쩔 수 없었음을 변명삼기도 하고.

덧글

  • 프리스티 2010/11/01 02:00 # 삭제 답글

    긴 근황을 끝까지 읽었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 한달 동안 정말, 수고했어요.
  • 단편선 2010/11/01 11:52 #

    믿을 수가 없음. 다음에 만나면 시험보겠습니다.
  • 게으른 동석 2010/11/01 10:26 # 삭제 답글

    단편선 글이 장편이라 다는 못 읽었지만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 단편선 2010/11/01 11:52 #

    이제 11월달부터는 본격 잉여잉옄ㅋㅋㅋㅋ
  • 보라 2010/11/02 03:06 # 답글

    화기동 단편선님 문장력이 의외로 (오 하고 깜짝 놀람)
    광주의 치킨이 아주 맛있었을 것 같아서 괜시리 이밤에... 아 배고파
  • 단편선 2010/11/03 13:32 #

    우왕 보라님앙 광주는 뭐... 다음에 함께 해염 >ㅅ<
  • 은별 2010/11/05 19:08 # 삭제 답글

    원고 기다리다 하도 심심해서 대충 다 읽었다. 문장이 짧아져서 다행이구나. 아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면 역시 재밌어. 상상이 되고. 나도 여러가지 이유로, 술은 자제하려고.
  • 단편선 2010/11/10 11:52 #

    상상이 된다라! 우리 이제 차 마시면서 수다나 떱시다 ㅜ
  • 바람과나무 2010/11/07 10:04 # 삭제 답글

    술 끊으면 몸도 마음도 명료해지고 돈도 아낄 수 있고 여러모로 좋아요
    대신 스트레스 푸는 방법 하나쯤은 만들어두시는게 좋죠
    아무튼 화요일날 봐요. 동네에서 송이버섯 국수라도 같이 먹도록 하죠 :)
  • 단편선 2010/11/10 11:52 #

    확실히 돈 아끼는 것만큼은 이득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피자를 ㅜ
  • 단편선 2010/11/10 11:52 #

    참, 그리고 어제 여러 자료들, 그리고 말씀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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