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용산 두리반' 농성 1주년을 맞아 보내는 편지, <한 찌질이로서. 내년에도, 열심히 노래하고 술 마시겠습니다>, 단편선 Writing

* 2010년 12월 24일, 그러니까 두리반 농성이 꼭 1주년을 맞는 날 있을 기자회견을 위한 대본입니다.

한 찌질이로서. 내년에도, 열심히 노래하고 술 마시겠습니다 / 단편선

제가 비록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구성원 자격으로 이곳에서 발언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 저는 제가 무언가를 ‘대표’하기는커녕 ‘대리’라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제가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지울 순 없겠으나) 훨씬 더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참작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자리에 서서 지난 1년 간 함께 농성해온 안종려 사장님, 유채림 선생님, 두리반 친구들, 그리고 동지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괜히 여러 감정이 듭니다. 슬퍼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득해지기도 합니다. 2월의 마지막 토요일, 그러니까 제가 두리반에 처음 들어온 날이기도 하고 자립음악회가 시작된 날이기도 한 그날, 그날의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오래간 함께 할 수 있을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다만 우리는 노래를 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한 주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어느새 1년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두리반에서 여전히 노래를 하고,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보 같았던 우리는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좋습니다. 실은 달라진 것도 많습니다. 지난해 24일, 가장 처음 농성을 시작하던 순간에 비하자면 지금의 두리반은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습니다. 알려지기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곳에서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만 2개입니다. 언론에 나간 보도는 셀 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연주를 한 뮤지션들 역시 셀 수가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단지 이곳에서 노래를 하고, 술을 마시고 열심히 놀았을 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물론 다른 것들, 이를테면 진보신당/민주노동당/사회당 등의 진보정당의 도움이라던지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의 활동들 같은 연대가 필요없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절실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노래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간이 같은 짓거리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어려운 일들도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는 노래하고 술 마시고 노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다행이었던 것이, 우리가 최소한 노래하고 술 마시는 것만큼은 프로의식을 가지고,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했다는 점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우리가 전문가였습니다. 유채림 선생님이 제게 항상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방식으로 싸운다면, 작가에게는 작가의 방식이 있다.” 유채림 선생님은 그 말씀대로, 지금도 작가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계십니다. 두리반에는 많은 ‘방식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목회자의 방식으로, 또 누군가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방식으로, 또 누군가는 활동가의 방식으로 저항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제 방식은 통기타를 치는 자립음악가, 애주가(라기 보다는 주당), 그리고 바보 동네 형과 백수 얼간이, 찌질이의 방식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렇게라도 무엇인가와 연대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지를 느낍니다. 정말 문제는, 못난 것이 아니라 (잘났더라도) 아무 것도 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우리는 잘 해왔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 두리반의 상황은 전혀 좋지 않습니다. 용역들이 협상을 한다는 빌미로 사람 없을 때를 노려 마치 자기 집 안방인양 오고가고 있으며(게다가 그들은 예절도 전혀 없습니다), 막고 막고 막아놓았던 수도세는 결국 터져 거의 100만원에 달하는 큰 금액을 물어야 되는, 그렇지 않으면 수도마저 쓸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전 100일도 훌쩍 넘은 지금, 전기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아 심지어 가스중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연탄난로를 들여놓은 상황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두리반은 여전히 춥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말 못할 사정들이 적지 않습니다. 해결의 기미는 아직까지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농성을 해야할까요?

이런저런 사정들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악재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이 노래하고 술 마시고 놀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포구청에 한 번 더 들어가야 될지도 모릅니다. 공무원 아저씨들을 만나는 것은 재미도 없고 별 이득도 없는 일이지만 해야한다면 하겠습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우리, 술 마시고 얼간이짓 하는 것을 멈추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유일한 의무가 있다면, 바로 그것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윤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각자가 열심히 하면서 모두가 행복한 삶,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밤마다 두리반에 상주하며 술 먹고 노는 한 음악가로서, 혹은 한 찌질이로서 저는 맹세하겠습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노래하고 술 마시겠습니다. 가능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손으로 부수기 전에 두리반을 넘겨주지 않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내 손으로 부술 수 있도록 열심히 농성하겠습니다.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단편선.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구성원 자격으로 온 만큼, 자립음악생산자모임도 두리반 농성이 끝나는 그날까지 함께 연대할 것을 약속합니다. 동지들, 마지막으로 구호 하나만 외치고 끝내겠습니다. 만국의! 잉여들이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부모님의 신뢰요! 얻을 것은 기본소득이다! 자본주의 철폐! 투쟁! 결사! 투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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