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받이 제시한 발효음악의 9계명에 연루된 아이디어. View



이 글은 심한 자의식 과잉 속에 쓰여진 글입니다.
그리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설겁게 구성되어진 글입니다.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초기부터 함께 한) 구성원인 한받은 일전에 광주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발제한 발효음악론(의 물론 초안) 말미에 발효음악의 9계명을 제시한 바 있었는데(안타깝게도 아직 net 상에서는 당시 발제의 전문을 찾을 수 없다) 당시에 나는 발효음악론에 대한 동조/동조하지 않음과는 별개로 9계명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를 잘 알지 못 했다. 그러나 음반 작업이라는 것을 시작한 다음, 나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한받을 한번 쯤은 찾아가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래는 당시 발제문 마지막에 있던 발효음악의 9계명. (아마 이후에 변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니 아직 확정된 버젼은 아닐 것이다.)


1. '홍대 앞'이라는 지역으로 활동범위를 한정시키지 말자.
2. 자신의 삶으로부터 '발효된 음악'을 만들어 판매하자.
3. '대중음악계(산업)'로 편입되어 대중매체(매스미디어)를 통해 소모되지 말자.
4. 새로운 음악소비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지역음악시장을 만들어나가자.
5. 조급해하지 말자.
6. 게으름과 술과 담배를 멀리 하자.
7. 최소한의 음향기술을 습득하자.
8. 현실문제에 개입하자.
9.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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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은 있으나,
1, 3, 4, 8가 어떻게 대중-공중-시민-인민-민중에 유통될 것인지, 즉 유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2 는 어떻게 창작할 것인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착상시킬 것인지, 즉 발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5. 6. 7, 9)는 (유통과 발상에 임하는) 태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최소한 한받의 관점에서, 태도의 문제는 종종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의 문제와도 연관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을 태도-기술의 영역이라 통칭하고 싶다.

재미있는 것은 1, 2, 3, 4, 8이 유통+발상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거의 동등한 비율로 태도-기술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어떻게 창작할 것인지, 발상할 것인지의 문제는 비율로 따졌을 때 가장 뒷전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한받이 발상의 영역을 중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것보다는,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라 본다는 쪽이 조금 더 옳지 않을까? (그러니까 한받에게 있어서도 발상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영역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받은 분명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대적이지 않은 형태의(전-근대 혹은 비-근대적인 형태의) 음악을 또한 알고 있다.)

1, 3, 4, 8의 영역은 이미 자립음악생산자모임에서도 어떻게든 다루고 있는 영역이다.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이 지향하고 있는 생활협동조합이란 거칠게 말하자면 아주 근본적으로는 경제-연합의 형태이며 유통의 문제는 정치-경제, 그리고 그에 따른 물적조건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일한 영역이라고 얘기하진 않겠다. 다른 쟁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 핵심적인 관심영역은 아니다.

한받에게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내가 태도-기술의 영역이라고 한 부분. 그러니까 5, 6, 7, 9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쓴다.

5. 조급해하지 말자.
6. 게으름과 술과 담배를 멀리 하자.
7. 최소한의 음향기술을 습득하자.
9.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갖자.

이를테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5. 조급해하지 말자. 가 도대체 어떻게 기술적인 문제가 될 수 있나?" 혹은 "6. 게으름과 술과 담배를 멀리 하자. 가 어떻게 기술적인 문제가 될 수 있나?" 리스너의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창작자-기술자의 입장으로 들어가자면 오히려 이것이야 말로 태도라기 보다는 가장 기술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나는 최근 며칠 간 하루 12시간이 넘는 작업을 연이어 하다 이명+두통 현상은 기본이고 저조한 몸상태로 인하여 그 주의 주말 공연까지도 망쳤는데, 그것을 달리 말하면 '자기-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속물적인 예를 든 것이고, 이보다 훨씬 근본적인 자기-배려들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말년의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에서 제시했던 '자기-배려의 기술'이라던지 '실존의 미학' 같은 것을 언급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궁금한 것은, 한받이 생각하는 '발표음악의 주체'란, 혹은 '자립음악의 주체'란 과연 어떤 것인지이다. 일반적으로 한받은 키치한 음악가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며 내게는 왠지 영성-생태-근본주의적인 이미지가 강한 음악가이다. 하지만 둘 다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한받은 주체의 문제를 (자신이 의식을 하건 그렇지 않건)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은 내가 이 사실을 캐치하게 된 것은 동료 음악가 중 한 명인 하헌진을 통해서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옆길로 새어, 다시 한번 물어야 할 것은 "그렇다면 한받의 음악에 있어 '주체성'이란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있는지?" 나는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물어야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받을 처음부터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끔 드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어 어떤 목적을 가정하지는 않겠다. 내가 목적을 설정한다 하여 text에서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릴 리가 없으며 우리는 기본적으로 '들리는 것'에 집중해야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혹시?' 하는 마음 뿐이다.) 그것을 듣는 경험이란 것이 내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차차 알아가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아이디어의 나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논리는 없다(하지만 차후에 어떤 매듭들을 통해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론'에 대해 코멘트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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