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 [찰라의 기초]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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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
찰라의 기초
(2011/백현진)
8.4

01. 선운사
02. 무릎베개
03. 목구멍
04. 어떤 냄새
05.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06. 학수고대했던 날
                                                       07. 여기까지
                                                       08. 한순간
                                                       09. 여름바람
                                                       10. 오후만 있던 일요일          
                                                       11. 눈물 닦은 눈물          
                                                       12. 봄의 풍경


백현진의 프로필이나 디스코그래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모든 판단들의 근거에는 결국─그것이 어떤 형태건─'믿음'이 깔려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음악에 대한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라, 이런저런 사실(fact)들을 경유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판단의 최종심급에 위치한 것은 분명 '믿음'이다. 음악의 감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하는 말;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를 다르게 적자면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물론 '음악'이라는 직물=텍스트 그 자체를 구성하는 사실관계들에 대해서, 최대한 존중해야한다 생각한다. 그것은 '음악'에 대한 예의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 나는 그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대한 '반응' 혹은 '받아들여짐'에 더 관심이 기운다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지금 '백현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백현진의 첫 라이브 음반 [찰라의 기초]에 대한 공식적인 최초의 반응은 아마 서정민갑 평론가의 것일 게다(레이블로부터 음반의 해설을 부탁받은 것으로 안다). 통상적인 내용의─물론 서정민갑 특유의 '수사에 강한' 필치가 묻어나긴 하나─해설에 가까운 지라 따로 불만가질 것은 없었으나 한 문장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노래가 가장 날 것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확인시켜준다." 아마 다른 이라면 쉽게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여러모로 무척이나 기묘하게 느껴졌다. 특히 '날 것 그 자체'라는 표현이 그러했다. 서정민갑은 왜 '날 것 그 자체'라 썼을까?

내가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 까닭은, 오히려 내게 [찰라의 기초]는 반대로 아주 '관조적'으로 경험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판단의 근거는 이 음반의 '녹음 상태'다. 백현진이 커버 안쪽에 수록된 짤막한 수기에 "뜻하지 않게 음향 엔지니어가 우리의 공연을 녹음하였다. 기록된 소리를 들으니 녹음을 목적으로 마이킹 된 것이 아니라 녹음 상태는 그저 그랬다.…"라 적었듯, 이 음반의 녹음 상태는 분명히 좋질 않다. 이렇게 적었을 때 나는 '좋다'와 '좋지 않다'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하겠으나 단호하게 일축하겠다; 이 음반의 녹음은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즉 음악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 또렷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이는 계수정이 연주한 피아노의 녹음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찰라의 기초]에서 피아노는 전혀 '풍성하지 않게' 들린다.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녹음을 목적으로 마이킹 된 것이 아니었기에) 피아노 특유의 풍부한 배음과 양감, 에너지감 등이 많이 유실된 탓이다. 비단 피아노뿐인가? 방준석의 기타도 마찬가지다(백현진의 노래는 상대적으로 '투명'한 편이다). 통상의 스튜디오 레코딩을 거친 음반은 물론 라이브 음반들에 비해서도 그렇다. 이래서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찰라의 기초]를 들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눈앞에 무대가 펼쳐지는가? 연주자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느껴지는가? 적어도 이 경우에 나는 "그렇다"라 대답할 수 없다. 나는 마치 '무대 앞에서'가 아닌 '무대 옆에서' 듣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공연장 안에서'가 아닌 '공연장 입구 앞에서' 듣는 것처럼 느낀다. '직접'이 아닌 '(녹화된) 비디오'로 보는 듯 느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어 [찰라의 기초]는 온전한 '몰입'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찰라의 기초]가 팬이 녹음한 비공식 부틀렉 정도의 음질은 아닌 이상, 전혀 '몰입'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토하자면, '관조'와 '몰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는 편이 더욱 정확하다.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 내게 [찰라의 기초]가 전작인 [반성의 시간]보다 더욱 '반성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이런 까닭에서였을 게다(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것. [찰라의 기초]에 실연한 곡 대부분은 [반성의 시간]에 수록된 것이다). 예를 들어 [반성의 시간]와 [찰라의 기초]에 모두 수록된 <무릎베개>의 경우, 전자에서 홀로 백현진의 목소리를 떠받치고 있는 클래식 기타는 지판을 옮기는 소리까지 또렷이 들릴 정도로 민감하게 녹음되어 있으며 백현진의 목소리 역시 더없이 가깝게 느껴진다(오디오 시스템에 따라 아주 다를 수 있겠으나, 2분 40초부터 3분 30초 정도까지 백현진이 "어떡해야 잊을 수 있나 / 어떡해야 당신을 잊을 수 있나"라 읊조리는 무렵, 백현진의 목소리는 너무 가까이 녹음된 나머지 마치 청자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작용'이고 '효과'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말했듯, '불투명'하다. 말했듯 내게 이것은 '반성' 즉 '돌아봄'을 요구한다. 우리는 '돌아봄'이 기본적으로 '…가 돌다/…가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로부터 발생함을 기억해야한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거리'를 본다.

내게 흥미로운 것은─'반성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꼭 필요한─이 '거리감' 혹은 그저 '거리'이다. 이 '거리'를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우리가 들을 수/감지할 수 있는 것이 결국 '(음의) 표피'뿐임을 고스란히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날 것 그 자체'란 결과적으로 '상상'에 불과하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을 제외하고 과연 무엇이 남는가? 내 '믿음'은 그럼에도 그곳엔 '표피'들이 남는다는 것이다. '날 것 그 자체'를 말하지 않고서도, '음악'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쯤에서 다들 알아차렸겠으나, 나는 지금 '진정성'이라는 '믿음'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찰라의 기초]에서 조금 더 부각되어야 할 것은 '날 것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한 발자국 떨어져 '표피'들이 어떻게 나아가고 붙고 떨어지고 다시 만나고 뒤섞이는지를 '관조'하는 것은 아닐까(아마 전영혁이라면 분명 "컴포지션, 콘트라스트, 하모니, 앙상블"을 논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적었을 때, 아마 나는 '표피'의 관점에서 [찰라의 기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제시하는 것이 크게 의미 없다 생각하는 까닭에서다. 다만 예의상, 짧게만 적자면 나는 이 실연에 참여한 백현진, 계수정, 방준석의 플레이가 아주 뛰어나다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플레이만 좋은 것이 아니라 셋 모두의 합이 훌륭하다. 그러나 이러한 '뛰어남'이 '음악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이는 백현진, 계수정, 방준석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나의 문제다. 나는 아직 무엇이 '음악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만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이들의 플레이에서 내가 느끼는 '뛰어남'이란 스포츠의 영역에서의 '뛰어남', 특히 육상 같은 종목의 선수들에게서 느껴지는 '뛰어남'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물론 그렇기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는 육상선수의 퍼포먼스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를 압축하여 나는 '이치에 닿다'라 표현하고 싶다. 즉 일종의 '합리'란 것이다. 실연, 그것도 즉흥성이 강조된(듯 들리는) 실연이 모종의 '합리성'을 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피나 바우쉬와 박찬욱이 백현진을 일컫어 '천재'라 찬사했다했을 때, 나는 문득 칸트의 '천재'에 대한 정의를 떠올렸던 것이다; "천재란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소질이다." (단편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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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간만에 쓰게 된 (비교적) 긴 음악글.
생각만 계속 돌리고 있다 사정상 급하게 완성할 수 밖에 없었던.
하지만 내게는 어쩔 수 없는 잠정결론으로서의.

대중음악웹진 보다에 실린 원문은 이곳.


덧글

  • mimyo_ 2011/04/01 10:58 # 답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녹음상태가 음악을 해치는 순간들도 있는 것 같았지만,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거리감을 통한 반성이라든가, 무대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는데, 어쩌면 음악/공연 관계 경험이 있는 편선님의, 모니터링의 경험, 혹은 관계된 공연을 지켜보는 경험에 의한 연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백현진씨 본인도 혹시 그런 인상에서 출반을 결심하신 걸까 하는 등의 호기심이 솟아나네요. ㅎ
  • 단편선 2011/04/03 09:53 #

    앗 이글루스 하시는 줄 몰랐네요. 사실 글이 좀 사변적인 지라… 뭔가 백현진에 대해 말한다기 보다는 백현진을 경유해서 '(음악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좀 망글이란 얘기죠 ㅜㅜ) 여하튼 저는 요새 저런 식으로 음악에 대해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백현진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은데, 왠지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면 기회가 닿을지도 모르겠네요 :) (그건 그렇고, 저는 음반해설도 그렇고 커버에도 그렇고 도대체 왜 말라르메의 경구를 써야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왜 썼어요? 라기 보다는 그걸 통해 어떤 '작용'을 노린 것인지…)
  • 단편선 2011/04/03 09:57 #

    그건 그렇고 급히 쓰다보니 뭔가 안 좋은 옛버릇들이 완전 돌출된 (이를테면 쉼표라던지 작은따옴표의 과도한 사용이라던지, 현학적인 말투라던지…) 느낌이라서 으으… 정말 먹물 워너비 돋네여 제가 봐도 ㅜㅜㅜㅜ 망했다…
  • mimyo_ 2011/04/03 11:45 #

    쭉 그만뒀다가 최근에 복귀했습니다. ㅎ 그래서 보다 보니 뭔가, 음악밸리 인기글에 늘상 계시길래. 으하.

    음. 음반 해설은 그렇다 치고 부클릿은 정말 mp3 판매에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돈 주고 샀는데 이게 뭐야. 엉엉.

    저는 뭐, 글이 좀 현학적이고 쉼표나 작은 따옴표 좀 붙으면 어떠냐는 쪽이어서.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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