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백지연의 끝장토론] 철들지 못한 것이 자랑은 아니다 / 단편선 Writing

철들지 못한 것이 자랑은 아니다 / 단편선

비키니 시위가 시위의 방식으로서 적절한지, 즉 효과적이면서도 알맞은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정봉주 구명운동’이라는 운동의 특성상 설득해내야 할 대상이 한정된 집단이 아니라 대중 전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슈가 된 만큼 ‘정봉주가 부당하게 구속되어있다’는 메시지 자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는 성공한 듯하나 1) 정봉주가 왜 구속되었는지 2) 그것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설명과 설득은 부족해 보인다. 시위형태의 특성상 특정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자동적으로 불쾌감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러나 이는 이러한 유형의 시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인 탓에 이를 지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 시위가 어떻게 이슈화 되었는가?’이다. 가령 내 경우, 이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의 한 멤버가 수감된 정봉주를 응원한답시고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라 쓴 민원서신을 촬영해올린 시점에서였다. 이후 자료를 찾다 같은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한 시사평론가가 “정 전 의원께서는 (교도소에서)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고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 방송한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이 발언들의 진의는 무엇일까? 수신대상이 정봉주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힘을 내라.’에 ‘성욕은 첨부한 비키니 사진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정도로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수신대상이 대중이라면 어떨까? 비키니 사진을 보면서 함께 성욕을 해결하자? 정봉주의 성욕 해결을 위해 비키니 사진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자?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원래 운동의 목표와는 어긋날뿐더러 메시지의 진의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사적인 자리에서 한정된 집단을 상대로 발화되었다 해도 옹호되기 힘들 지언데 하물며 한정되지 않은 대중을 상대로, 게다가 ‘굳이’ 그것을 ‘직접’ 발표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추측컨대 ‘굳이’ 문제가 될 발언을 ‘발표’한 행위의 진정한 메시지는 별 것 아니라, 그냥 “우리는 이런 저질스런 것도 공공연히 말할 수 있다”는 식의 아주 소박한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나 싶다. 이를 “우리는 이 정도로 용감하다” 내지는 “우리는 이 정도로 관대하다” 정도로 해석해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입대를 앞둔 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너 아직도 동정이냐?”는 식으로 질문하는, 이 땅의 수많은 미성숙한 남성들의 허세 부리기와 뭐가 다른가? 실은 유치한 짓일뿐더러, 자신의 미성숙을 당당하게 대중 앞에 공표한다는 점에서 민망스럽기까지 한 행위인 것이다.

물론 미성숙한 이들이 미성숙한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누굴 탓할 일은 아니다. 자신의 미성숙을 대놓고 자랑하는 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 또한 서로에게 거추장스러운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신의 미성숙이 뭐라도 되는 양 과시하는 행위에 대해선 비판할 수 있다. 낯 뜨거운 과시에 분명하게 동조하는 이들이 있고 나아가 이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 사기 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땅히 위치해야할 자리를 찾아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 비키니 시위가 적절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일군의 미성숙한 이들의 개입으로 인해 원래의 목적은 표류하게 되었고 원치 않았던 노이즈만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실정이다. 몸에 대한 결정권이 전적으로 주체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해당 주체에게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개입할 자유가 있고 원래의 목적을 다시금 강조할 책임이 있다. 미성숙한 이들에게 동조해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전술적인 이유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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